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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부가 경쟁시장에 걸림돌이 된다면?'을 주제로 중앙일보에 특별기고함.
글쓴이 : 관리자 작성일 : 2010-02-08 조회: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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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부가 경쟁시장에 걸림돌이 된다면?

중앙일보 2월 8일자, E11면

 사업자들이 가격·수량·판매조건·판매지역 등의 결정 과정에서 서로 짜고 경쟁을 배제하는 공동행위는 경쟁시장의 형성과 유지에 결정적 위해를 가하는 대표적인 경쟁 제한 행위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경쟁법을 가진 모든 나라가 이의 위반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미국은 체형까지 가한다.

그런데 이 공동행위가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스스로에 의해 주도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일이다. 우리 정부의 각 부처는 대부분 많은 각종 사업자 단체를 거느리고 있고 이들이 정부 정책의 통로 구실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통해 사실상 광범위한 관·민 통합형 공동행위가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관료들은 일반적으로 이에 대한 문제 인식이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이러한 일을 소속 부처 본연의 기능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정부의 행정지도를 계기로 또는 이를 빙자하여 사업자 간에 공동행위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행정지도는 원래 행정기관이 법적 근거는 없으나 일정한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특정인에게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사실행위다. 정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던 과거에는 행정의 각 분야에 있어서 행정지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정부와 국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법률 행위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던 때도 있었다. 경제 운용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이 많이 달라진 지금도 여전히 행정지도는 각급 정부기관에 의해 매우 선호되고 있는 행정 작용의 한 형태로 남아 있다.

행정절차법이 규정하는 순수한 의미의 행정지도는 강제성이 없어 요청받은 자는 자신의 의견 개진을 통해 행정기관과 의견 조정이 가능하고 행정기관 입장에서는 충돌이나 대립 없이 자발적인 국민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입법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약하고, 법으로 모든 사항을 규율할 수는 없는 법과 현실, 정부와 시장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윤활유와 같은 기능도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제도의 취지에 반하여 행정지도가 상당한 강제성을 수반하거나 특히 규제 산업을 중심으로 사업자들에게 일정한 경제활동을 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정부의 행정지도가 있었다는 것을 빌미로 사업자들이 별도의 합의를 통해 가격 등에 대한 담합을 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설사 선의의 목적으로 시작된 행정지도라도 시장에서 왜곡돼 경쟁 원리가 혐오하는 악성의 공동행위로 발전되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공정거래법 집행으로 처벌을 받은 공동행위 중 20여 건의 주요한 사건이 이런 유형의 공동행위라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경쟁법 집행이 강화되면서 우리 기업이 외국에서 공동행위를 이유로 천문학적 규모의 벌금을 부과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우리 정부의 관계기관으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았다는 사실이 외국 경쟁당국으로부터의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시장경제 하에서는 시장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부가 ‘해야 될 일을 찾아서 하는 것’보다 오히려 ‘해서는 안 될 일은 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라면 불필요한 정부 규제와 더불어 정부 주도의 공동행위와 공동행위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행정지도도 정부가 해서는 안 될 일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인식해야 한다. 경쟁당국의 기능이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범정부 차원의 인식과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의 ‘시장’과 ‘경쟁’의 유효성에 대한 믿음의 토대 위에서만 우리 경제의 건전하고 지속적인 발전은 가능하다.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 (전 공정거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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